예술은 누구의 역사 위에 서는가...한·일 문화의 궤적 속에서 본 일본 작품 『국보』와 손신의 작업 비교

현대 예술은 더 이상 미적 성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예술이 어떤 역사 위에 서 있으며, 누구의 삶을 전제로 작동하는지가 함께 질문된다.
이 지점에서 일본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대표작 ‘국보‘와 한국 현대미술가 손신의 작업은, 한·일 문화가 예술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국보』는 일본 전통예술 가부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예술은 개인의 삶을 초과하는 절대적 가치이며, ‘국보’라는 지위는 국가가 승인한 숭고함의 결정체다.
혈통과 계보, 도제 시스템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감정과 사적 삶을 제거당하며 하나의 상징으로 완성된다. 이는 메이지 이후 일본 근대 국가가 전통을 제도화하고, 예술을 국가 정체성의 기둥으로 조직해 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국보』는 이러한 구조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그 비극적 숭고함을 해체하지는 않는다. 예술의 완성은 인간의 소진 위에 성립한다.
반면 손신의 작업은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출발한다. 식민지 경험, 분단,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과정을 거친 한국 현대사는 예술을 국가의 상징으로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오히려 예술은 반복적으로 국가 권력의 폭력과 침묵을 마주해 왔다.
손신은 이 역사적 토대 위에서 예술가를 상징이나 영웅으로 세우기보다, 현장에 책임지는 목격자로 위치시킨다.
그의 대표작 「Accompany-04-27-09-30, 2018」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환호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을 응시한다.
분단의 역사를 단번에 봉합할 수 없다는 사실, ‘함께 간다’는 말이 얼마나 불완전한 약속인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이는 국가 서사에 흡수되지 않은 한국적 현실 인식이다.
「COVID-19-Sum-04-08-15-07, 2021」은 팬데믹 시기의 일상을 기록한다. 비어 있는 도시와 고립된 인간의 모습은 재난을 영웅적 서사로 전환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멈춘 채 지속된 시간,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고립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남긴다. 이는 국가의 대응이나 성과가 아니라, 인간의 상태를 기록하는 태도다.

최근작 「Festival-01-19-14-03, 2025」는 화천군 산천어축제를 다루지만 공동체적 환희보다 반복되는 소비 구조에 주목한다.
축제가 끝난 자리, 흩어진 동선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제가 더 이상 공동체 회복의 의례가 아니라, 잠시 소비되고 잊히는 이벤트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한·일 문화가 예술을 대하는 근본 태도의 차이로 읽힌다. 『국보』가 예술을 국가와 전통의 연속선 위에 두고, 개인의 희생을 통해 숭고함을 완성하는 서사라면, 손신의 작업은 국가와 제도의 균열 속에서 인간의 조건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전자는 완성된 형식을 지향하고, 후자는 질문이 지속되는 상태를 택한다.
오늘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종종 감각적 상품이나 기념비로 소비된다. 그러나 한·일 두 작가의 대비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은 인간을 소모함으로써 위대해질 것인가, 아니면 인간 곁에 머물며 사회의 조건을 성찰할 것인가.
『국보』가 근대 예술 체계의 완결된 초상이라면, 손신의 작업은 그 이후를 향한 윤리적 전환의 징후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가 예술에 부여해 온 역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