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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강진아트홀 초대전 양규철 화백과 제자들' 초대전..."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 그림으로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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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강진아트홀 초대전 양규철 화백과 제자들' 초대전..."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 그림으로 되살리다"

방경진 기자
입력
양규철 <금곡사 풍경> 종이에 수채, 53×45cm, 2011. 양 화백이 1970~80년대에 강진 제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던 금곡사 입구의 모습을 강진을 떠난 25년 뒤에 다시 찾아 현장사생한 실경수채화. 25년 전의 활달한 그림보다 온화한 느낌이다.

청자와 실학의 고장 전남 강진군(군수 강진원)은 2012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로 '양규철 화백과 제자들' 초대전을 개최한다.

오는 7월 1일부터 14일까지 보름 동안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1972년부터 1985년까지 15년간 강진군의 다섯 중학교(작천중, 성전중, 칠량중, 강진중, 도암중)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강진의 풍경을 그렸던 양규철(86세) 화백의 수채화와 그의 제자 12명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공개하는 자리다.

양규철 화백은 1939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의 여러 미술교사에게 그림을 배운 뒤 한국 수채화의 창시자 배동신(1920~2008) 화백과 함께 '활동하면서 1959년 전남공보관에서 수채화로 첫 개인전을 가진 한국미술계의 거장이다.

1968년 배동신 등과 함께 수채화창작가협회를 창립한 뒤 1972년 강진 작천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해 이후 다섯 군데의 중학교에서 후양 양성과 수채화 창작에 몰두했다.

1986년 장성군의 중학교로 전근한 뒤 1999년 진도 조도중학교를 끝으로 30년간의 교직을 마치고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23년 8월, 강진아트홀 초대전 개막식 후의 양규철 선생님 부부와 그의 제자들. 양 화백은 디스크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전시장을 찾으셨다.
2023년 8월, 강진아트홀 초대전 개막식 후의 양규철 선생님 부부와 그의 제자들. 양 화백은 디스크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전시장을 찾으셨다.

2023년 8월, 강진아트홀 초대전 개막식 후의 양규철 선생님 부부와 그의 제자들. 양 화백은 디스크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전시장을 찾으셨다.
양 화백은 강진의 중학교 교사시절, 여느 미술교사와는 달리 수업이 끝난 뒤 제자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가르치면서 함께 강진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의 건강한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낸 진정한 미술교육자였다.

이는 주어진 수업만 진행하는 대부분의 교사들과는 분명히 차별된다. 전근한 학교마다 방가 후 현장교육을 실시하여 강진군에서 수십 명의 소년 미술학도가 탄생했고, 그 중 10여 명은 양 화백과 같은 미술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

직업도 화가, 조각가,, 공예가, 디자이너, 큐레이터, 교육자, 기획자, 평론가 등 다양하다.

한편, 양 화백이 1972년부터 15년간 헌신한 강진군의 미술교육은 그보다 171년 전인 1801년에 강진으로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귀양살이하던 18년 동안 24명의 제자를 길러낸 실학교육에 비견할 만하다.

양 화백이 지향하고 교육했던 사실주의 미술은 다산 선생이 지향하고 교육했던 실학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강진중학교 재직 시절(1978~1981)학생들 앞에서 수채로 현장을 사생하는 양규철 화백. 양 화백의 현장 사생은 다산 선생의 정확한 형태 묘사를 통한 대상의 정신 표현이라는 사실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강진중학교 재직 시절(1978~1981)학생들 앞에서 수채로 현장을 사생하는 양규철 화백. 양 화백의 현장 사생은 다산 선생의 정확한 형태 묘사를 통한 대상의 정신 표현이라는 사실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강진중학교 재직 시절(1978~1981)학생들 앞에서 수채로 현장을 사생하는 양규철 화백. 양 화백의 현장 사생은 다산 선생의 정확한 형태 묘사를 통한 대상의 정신 표현이라는 사실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양 화백의 사실주의 정신은 그의 고향 순창에서 조선 전기의 정치가 신숙주(1417~1475)의 제수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인 설씨부인(1429~1503)이 실제 풍경을 그린 <광덕산 부도암도>(1482)와 다산 선생의 외증조부 윤두서(1668~1715)와 그의 아들 윤덕희(1685~1766) 및 손자 윤용(1708~1740)의 풍속화에 잘 나타나 있다.

다산 선생은 이러한 외가와 그가 사숙했던 실학자 이익의 영향을 받아 대상의 사실적인 형태 묘사를 통한 정신 표현(사실성)을 강조했다.

이는 다산의 제자 초의선사(1786~1866)에게 서회를 배웠던 소치 허련(1808-1893)의 스승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지향한 형태보다 정신 표현(사의성)과는 상반되는 태도다.

다산의 사실정신은 실학의 요체로서 양 화백의 자연주의 미학을 아우른다. 양 화백의 미학을 공부한 강진 제자들의 작품에서도 사실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다산 정약용의 실학정신과 양규철 화백의 사실정신,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양 화백 제자들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강진군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볼 기회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전시 초대글에서 "이번 초대전은 224년 전 강진에 유배되어 24명의 제자를 길러내신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실학정신을 계승한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19세기 초반 강진에서 제자들과 함께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을 이어받은 양규철 화백과 그의 제자들이 창작한 맑고 투명한 수채화와 다양하고 참신한 미술작품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심리적 안정을 느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양 화백의 1977년 칠량중 제자로 이번 전시에 초대된 손신(사단법인 케이메세나네트워크 이사장)은 "양규철 선생님은 이론보다 현장을 더 중요시하셨다.

미술 수업시간에는 학교 앞바다로 나가 대섬(竹島)이 보이는 자리에서 작은 수채화 사생 대회를 열곤 했다. 그림 그리기가 끝나면 동무들과 삼삼오오 어깨를 맞대고 진지하고 신기한 마음으로 각 그림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나와 한 친구의 작품을 중심에 두고, 논두렁에 스케치북을 나란히 놓아 한 장 한 장 설명하던 선생님의 열정과 진지한 눈빛이 번진 수채화 그림 속에 녹아 있다.

그때 우리가 그린 그림의 선과 면, 수채화 물감의 농도와 형태는 부자연스럽고 엉망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꿈을 선생님의 마음으로 그리고 있었다"고 학창시절을 회고했다.

1974~5년 성전중 제자 김이천(미술평론가)은 "국민학생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가족 그림이 교실 벽면에 붙었던 추억은 중학교 2학년 때 양규철 선생님을 만나면서 화가의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을 따라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면서 선생님의 붓질 하나하나가 신기해 집에서 밤새도록 선생님의 그림을 흉내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지식과 기술의 전달자가 아니라 참된 인생의 길잡이로서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성전중 이웃의 성전고 재학 중 성전중 학생들과 함께 양 화백에게 그림을 배워던 조광희(여성화가)는 "양규철 선생님께서 강진에 부임하셨을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배움의 열정은 있었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저에게 선생님은 따뜻하고 세심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뿐 아니라,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대상 앞에 머무르는 법, 그리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알려주셨습니다.그 덕분에 저는 전공자가 아니지만 틈틈이 붓을 놓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고, 그것이 제 삶에 균형과 활력을 주는 귀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 참여 작가는 김이천, 김종안, 김충호,  김하기, 김흥두, 서기오, 손신, 유안석, 윤영필, 이제훈, 이호국, 조광희 등이다.

방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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