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메르, ‘듀프’ 열풍 속 여전한 클래식의 가치
명품 브랜드와 유사한 디자인의 ‘듀프’ 제품 인기, 르메르도 예외 아니다
방경진 기자 = 최근 패션업계에서 ‘듀프(Dupe)’ 제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고가 브랜드와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저렴한 제품을 일컫는 ‘듀프’ 소비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프리미엄 브랜드 르메르(LEMAIRE) 또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습이다.

MZ세대 사이에서 르메르의 클래식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루엣이 인기를 끌면서, SPA 브랜드인 자라(ZARA)에서 르메르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르메르맛 자라’로 불리며, 고급 브랜드의 감성을 더 낮은 가격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르메르 코트의 경우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많은 패션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 때문에 구매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반면 자라, 망고, H&M 등 SPA 브랜드에서는 르메르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코트를 10~30만 원대의 가격으로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듀프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소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리서치 회사 모닝컨설트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미국 성인 응답자의 3분의 1이 듀프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Z세대의 49%, 밀레니얼 세대의 44%가 듀프 소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르메르 외에도 에르메스, 포터, 메종 마르지엘라 등의 브랜드를 모티브로 한 제품을 찾고 있다. 이를테면 포터 가방의 대체재로 ‘포터맛 유니클로’, 에르메스 버킨백의 대체재로 ‘워킨백’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듀프 소비의 확산에는 ‘YONO(You Only Need One, 꼭 필요한 것만 구매)’ 트렌드가 한몫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은 보다 실용적인 소비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SPA 브랜드의 성장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2025년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에 따르면, 응답자의 80.7%가 “불필요한 물건 구매를 최대한 자제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실제 매출로도 확인된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스파오의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6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유니클로 또한 같은 기간 동안 1조 6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약 15% 성장했다.
듀프 제품이 유행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르메르의 강점은 단순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고급 원단, 정교한 재단, 차별화된 미적 감각에 있다. 특히 르메르는 시즌마다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감성과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쌓아가고 있다.
SPA 브랜드가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달리, 르메르는 오랜 시간 착용할 수 있는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강조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명품 브랜드들은 지속 가능한 소재 개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제작 방식, 희소성을 유지하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듀프 제품과의 차별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결국 듀프 제품이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르메르와 같은 브랜드가 지닌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재와 같은 소비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SPA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명품 감성’이 더욱 강력한 시장 흐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르메르가 듀프 열풍 속에서 어떤 전략을 펼칠지, 소비자들은 명품과 듀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